'산책로 둘'에 해당되는 글 30건

  1. 이은주. 그녀의 6주기 2011.02.28
  2. 만추 2011.02.19
  3. 비포 선셋 2010.12.20
  4. 훌라걸스 2010.12.18
  5. 이터널 선샤인 2010.11.24
  6. 오아시스 2010.11.23
  7. 꾸미지 않아도 전해지는 진심 <대한민국 영화대상> 2010.11.21
  8. 다크 나이트 2010.11.15
  9. 레인 오버 미 2010.10.25
  10. 미스 리틀 선샤인 2010.08.04
  11. 잘알지도 못하면서 2010.08.04
  12. 허진호 2010.01.29
  13. 스탠드 바이 미 (stand by me) 2010.01.22
  14. 금성무 2009.11.12
  15. hommage 2009.11.10

이은주. 그녀의 6주기



까뮈는 자살을 '고백'이라고 말했다.
삶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인정하는 고백.

어떤 사람은 자살을 '삶에 대한 이해'라고 말했다.
살아간다는 행위의 무의미와 무가치함을
너무 빨리 이해해버린 삶의 이해.

내가 사랑하는 그녀
이은주에게 있어서의 자살이란.
과연 무엇이었을까.




만추



"사랑이 무어라 생각해?"
라고 누군가 묻는다면 뭐라 대답할 수 있을까?
영화 '만추'를 본 관객이라면 사랑은 '인간의 평정심을 뒤흔드는 것'이라
대답하는 이가 있을런지도 모르겠다.

훈과 애나.
처음엔 이름조차 모르던 그 둘은 사랑이란 감정에 근접한 감정들로
서로에게 다가가기 시작한다.
그것이 사랑이란 결실이 될 지, 아닐지는 아무도 몰랐다.
영화는 그렇게 자연스러운 감정의 속도를 한 걸음, 한 걸음 보여준다.
마치 그것은 현실 속의 느낌처럼 뚜렷해서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즈음에는
마치 사랑이라는 기억의 타투가 새겨진 느낌이 들 정도로 생생하게 손에 잡힐 것만 같다.
사람과 사랑에 대한 믿음이 반드시 있다거나 꼭 있어야 한다고는 생각지 않지만,
그래도 누가, 누군가에게 마음을 여는 순간은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 '만추'는 '마음을 여는 그 순간'에 대한 영화다.




비포 선셋


9년만에 만난 제시와 셀린느.
그 둘이 나누던 형식적인 안부들.

How are you?
Good, and you?
I'm good, yeah, I'm great, i'm...

영화를 보는 나는, 안도한다.
작가와의 대화에 나온 제시의 모습을 보고
가볍게 인사하는 그들을 보고 (좋아보인다)고 생각한다.
9년 전의 하룻밤이 그 둘의 삶을 망쳐놓지 않았다고 생각하기에,
저 두사람은 (괜찮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들은 여전히 사랑스럽다고.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다.

세느강의 유람선을 타기 전까지 제시와 셀린느는
'Before Sunrise'를 그대로 반복한다.
미국에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강변을 걷는다.
그들은 서로의 안부를 묻다가 하는 일을 궁금해 하기도 하고,
환경주의니 사회주의니 같은 가벼운 토론에 빠졌다가
조금 달라보이냐는 셀린느의 물음에
벗은 모습을 봐야 알겠다고 농담을 하기도 하고,
이야기 도중 연상된 옛 일상을 말하고,
얼마 전 꿈에 대해, 별자리에 대해,
9년 전 기억에 대해 이야기하고 이야기하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조금 다르다.
제시와 셀린느의 그토록 즐겁기만 한 대화 속에 9년이 들어있다.
안부와 안부사이, 농담과 농담사이에 그때의 느낌이 살아있다.
98년에 서로 같은 뉴욕땅에 살았다는 사실을 안 제시의 표정은
그저 '놀란'것이 아니다.
영화를 보는 우리는,
그들이 서로를 본 것 같은 착각속에 산 경험을 굳이 듣지 않아도
해가 뜨기 전 함께한 하룻밤이 
그들의 9년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잘 알고 있다.
그 크기는 'Before Sunrise' 라는 영화에 감동받은 사람의 수에 비례한다.

세느강변의 유람선을 탄 그들.
갑판에 선 셀린느는 지금까지와는 사뭇 다르게
고백조의 말투로 여러가지를 털어놓는다.
9년전의 자신을 젊고 어리석었다고 말하고,
제시와 셀린느는 옛날을 회상하는 늙은 여자의 꿈에 나오는
캐릭터일 뿐이라고 이야기한다.
셀린느가 그렇게 말하는 순간,
'Before Sunrise'와 'Before Sunset',
두 순간에 존재했던 그들에게
'Before Sunrise'의 순간이 사라진다.
9년전의 기억은 그저 제시의 소설 속에 존재하는 아름다움이다.
그들은 이제 각자의 집과 삶이 생긴 삼십대이고,
수줍던 공기는 오래전에 증발되었다.
배를 탄 후에 들려주는 두 사람의 생활은
겉보기와는 딴판으로 엉망이다.
물론 그들의 삶이 그렇게 된 건 9년전부터였다.
하루의 사랑과 그 후의 고통으로 인해서.
두 사람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결국 서로의 삶을 그토록 엉망으로 만들어 놓은
장본인과 다시 만나고 있는 것이다.

유람선에서 내려 집으로 가는 차에서
먼저, 셀린느의 감정이 폭팔한다.
그것은 자동차라는 작은 공간과 매우 어울리는 갑작스러움이다.
셀린느는 제시에게 말할 기회도 주지 않고
그녀가 지금껏 느낀 외로움, 분함, 혼란스러움을 분출한다.
결국 그녀의 감정은 제시와의 재회 자체를 슬퍼하기에 이르고
결혼해서 파리에 나타난 제시를 자신이 겪었던 옛 남자들과 동일시한다.
차에서 내리려고 했던 셀린느에 이어
제시가 말하기 시작한다.
그는 결혼생활의 불행을 말하며
6개월 뒤 비엔나에서 셀린느를 만나지 못했을 때
사랑을 포기했어야 했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그는 꿈 이야기를 하는데
플랫폼에서 셀린느가 탄 기차를 끝없이 지나가는 꿈이다.
후에 그는 셀린느의 물음에 그저 꼬시기 위한 거짓말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우리는 알고 있다.
그것은, 거짓이 아니다.

셀린느의 집에 도착한 두 사람은 잠시 포옹을 하는데
안아도 허물어지지 않는다는 셀린느의 농담에
다시 원래의 그들로 돌아온다.
차 안에서 있었던 두 사람의 폭팔이
그 짧은 순간 모두를 '성장'하게 만들었다.
셀린느는 제시와의 기억을 담은 왈츠 한 곡을 들려주고
니나 시몬의 라이브를 들으며 춤을 춘다.
그때, 셀린느가 이러다 비행기를 놓치겠다고 말한다.
이제까지 괜찮다고, 아직 멀었다고, 갈 수 있다고 끌던
제시의 대답이 이번엔 조금 다르다.

i know.

그렇게 끝이다.
대답과 뉘앙스는 굉장히 얘매한데,
감독의 말처럼, "결말은 오픈, 선택은 자유"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어쩌면, "그 이후는 중요하지 않다"고 이야기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제시와 셀린느가 보낸 해가 지기전의 하루는
늙은 여자의 회상에, 제시의 책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Before Sunset'이라는 하나의 영화에 머물지 않는다.
그들에게 'Before Sunrise'의 하루가 평생보다 긴 하루였듯이
'Before Sunset'의 하루 역시 그렇다.
오히려 9년 전보다 더 성숙하게, 눈물나게, 사랑스럽게.


훌라걸스


마음이 따뜻해지는 영화, 라고만 말하기엔
이런저런 삶의 모습이 참 많이 겹쳐져 있는 영화다.

사람들의 삶은 각각 동서남북으로 서 있어,
각각은 서로의 삶을 이해하지 못해 이런저런 불협화음이 나기도 하지만,
영화는 그런 삶들을 쓰다듬어 주면서
어떠한 삶이든 열심히 살고 있는 당신의 삶은 나쁜게 아니라고
그렇게 얘기해 주고 있는 것만 같았다.
모두의 삶은 나름대로 힘겹지만 소중히 지켜나가야 한다고.
꿈도 삶도 희망도 모두모두 잃지 않고
열심히하면 잘 될수 있는 거라고.

삶이 마냥 해피엔딩은 아니건만,
이런 영화를 보면 간절히 바라게 된다.
그들의 삶이 해피엔딩이기를.
열심히 살고, 열심히 버텨내는 그 모든 이들의 삶은
그만큼의 행복한 대가가 오기를. 
탄광일을 한 평생 고집하고 살아오는 사람들의 그 완고한 삶에도.
시대의 흐름을 따라 새로운 분야에 발 담그는 그런 삶에도.
쓰러져가는 탄광촌에서 필사적으로 훌라춤을 배우는 그 열정 어린 삶에도.
도시로부터 버림받고 지친 삶의 무게에 짓눌려 있지만
다시 한번 희망을 되찾는 그런 삶에도.

그래서 훌라공연을 끝내는 마지막 순간을
행복의 눈물을 흘릴 줄 아는
그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이터널 선샤인



함께 한 기억을 지우는 것과 간직하는 것.

난 종종
'남녀가 헤어지면, 그저 모르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라고
말하곤 했는데,
이 영화를 보고 과연 어떤 것이 더 나은 것인가.란
고민을 하게 되었다.
아프고 힘들더라도, 남겨진 기억이 더 소중한 걸까.

세 번이나 봤지만
한번 더 봐야 할 영화.



오아시스



이유가 없어도 꽃 받으니 너무 좋은 것.
말이 좀 늦어도 그가 다 알아들으니 편안한 것.
마마라고 불러주니 최고가 된 기분인 것.
자장면이라도 외식이니까 맛있는 것.
그 남자의 가족에게 잘 보이지못해 속상한 것.
뒷모습을 보이는 그에게 '가지마' 라고 말하는 것.

여자에게 사랑은 그런 것이다.
그녀는 진짜 사랑을 한다.




꾸미지 않아도 전해지는 진심 <대한민국 영화대상>


<대한민국 영화대상>은 돌발과 파격이 배제된 지극히 평범한 시상식이었다.
그러나 무엇이 특별했느냐고 묻는다면,
이 시상식은 너무나 평범한 방식으로 영화를 사랑하고 영화인들을 축하했기에
오히려 특별한 행사였다 할 수 있겠다.

예컨대,
소녀시대의 축하무대에 동참한 송윤아는 자연스럽게 내빈들의 웃음을 유도했고,
이것은 초대받은 사람들의 긴장을 풀어주려는 주최자의 최선이었다.
또한 시상식은 행사와 방송의 화제를 만들기 위해 배우들에게
억지스러운 상황을 맡기거나 부담스러운 대답을 요구하지도 않았다.
스스로 한 발 물러나 배우들에게 주인공의 자리를 내어 주고
묵묵히 정해진 순서를 착오 없이 진행해 나갈 뿐이었다.
덕분에 누구도 당황하거나 불안해하지 않고 기쁨과 축하를 만끽 할 수 있었다.


허무한 말장난과 가십 대신 <대한민국 영화대상>이 공들여 포착한 것은
영화 안에 빠져있는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시>의 대목을 인용하여 만든 노래를 발표한 박기영의 무대는
영화제가 보여줄 수 있는 진심의 고급스러운 사례였고,
<아저씨>의 삽입곡을 따라 부르는 김새론의 입모양은
그녀를 한명의 신인 여배우로 인정할 수밖에 없는 진지한 열정을 대변했다.


딱히 빠진 것은 없으나 어딘가 담백한 이 시상식의 분위기는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서영희의 소감에서도 그대로 이어졌다.

한 계단 오르기가 힘겨워 그만둘까 고민했었다는 그녀는
“너무 좋은데 아무 생각이 안 나요”라며 웃는 얼굴로 소감을 마무리 했다.
그러나 오열하지도 않고, 멋 부린 말로 힘주지도 않은
그 평범한 이야기에 동료 여배우들은 눈물을 훔쳤다.

가장 중요한 것은 꾸미지 않아도 전해지는 법이라는 진리를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아주 오랜만에 배우들의 드레스업보다 그들의 눈물이 기억에 남는 시상식이었다.
그것만으로 이 시상식이 부활한 이유는 충분해 보인다.



다크 나이트



두번 보고, 두번 모두 감동한
너무나도 잘 빠진 수트같은 영화.

잭 니콜슨의 조커의 오리지널을 넘어 '오리지널'로 산화 된
히스 레저의 연기를 보니 그가 죽었다는 게 새삼 아쉽다.
밑도 끝도 없는 살아있는 악인의 연기.

그가 연기한 이명현상 같은 소리가 나오는 장면들이 가장 좋다.
그 장면들이 다시 보고싶어, 늦은 밤 다시 감상.
지루한 장면은, 고든형사의 가족들이 나오는 마지막 씬.
무려 게리 올드만이 나옴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짧게 나마라도 꼭 언급하고 싶었던
[다크 나이트], 그리고 [히스 레저]




잘자, 히스 레저.


레인 오버 미



심영섭 영화평론가가 힐링 테라피에 대해 설명하면서
이 영화를 언급한 적이 있다.
상투적인 소재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소재로 부터 풍겨나오는 감상을 느끼고 싶었던 것 같다.

영화는 슬펐다. 소소한 웃음이 있고, 손등을 감싸쥐는 온기가 있었지만
사실 그보다는 담담하고 애틋한 영화였다.
웃음도 나지만 콧등이 살짝살짝 간지러운.

딱히, 가족을 잃었을 때 어떤 슬픔이 습격할지 고민 해본적이 없다.
평소에 하는 생각들이 오늘, 내일 나에게 생길 일들로 가득해서
삼풍백화점과 성수대교의 붕괴도 대구지하철 폭발사고도
안타깝기는 하지만, 그냥 막연한 안타까움이었다.

그러나 이 영화는,
막연한 안타까움에 대한 이야기를 눈 앞에서 목도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재앙과 같은 사고 현장의 혼란스러움이 아니라
혼란이 끝나고 잠잠해진 시간 속에 투망되지 않은 잔여물 같이
가득가득 남아있는 아픔. 그리고 그걸 감당하는 사람.

그래서
산발적으로 터져나오는 슬픔보다는 정리되서
그 핵심만 남아있는 처연함이 더 안타까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떤이는 상투적인 이야기라고 엔딩이 별로라고
영화의 흠을 잡았지만 벌어진 상처가 봉합되고,
후시딘도 자주자주 발라줘야 하는 때도 분명히 존재한다.
삶이 속임수로, 거짓말로 가득해도
어느 순간에는 서로를 위로할 수 있는 존재가 필요하다.
그리고 결국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건 그런 순간에 찾아온다.

미련이 남아 뒤돌아보고,
또 뒤돌아봐도 그래서 머뭇거려도
걸음을 내 딛게 하는 건 앞에서 나를 향해
'안녕'이라며 손을 흔들어주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눈물이 나고도, 한참 눈시울을 빨갛게 만들 영화.
물론, 난 울지 않았지만.
하반기에 봤던 영화 중 가장 좋았다.



붙임말: OST도 완소

미스 리틀 선샤인



어린 시절, 한참이나 오랫동안 눈물을 짜내고 있는데
아무도 나를 돌아봐주지 않은 경험을 해 본 사람이라면
나에게 닥친 그 슬픈 일 보다는 나에게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 사람들이 야속 할 때가 있다.
그럴 때, 누군가 슬그머니 다가와 나를 뒤에서 꼭 안아준다면
그 순간은 혼자였을 때보다 더 더 더서러워진다.
왜 이제서야 내가 우는 걸 알아봐준거야. 라며.

나이를 먹으면 불리한 게 있다.
유리해진 게 많으니 불리해지는 일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지만,
특히나 마음대로 울지 못하는 일은 불편하기 짝이 없다.

정확히는 남들 앞에서 쉽게 울면 안된다.
무슨 이유인 지는 모르겠지만, 고스톱을 쳐서 나이를 따지 않았기에
남들 앞에서 보이는 눈물은 속살을 내보이는 것과는 다른 의미를 가진 부끄러움이다.
'졌다'라는 느낌이라면 적당할 까. (물론 기쁘고 행복해서 흘리는 눈물은 예외!)

눈물이 가지는 느낌은 개인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우리는 어쨌든 눈물을 아껴야 한다는 배움을 얻고
그렇게 하기 위해 슬픔을 참는 법도 연습을 한다.
하지만 감정이 참는다고 해서 참아지는 가.
참는 것이 아니라 참는 척만 하는거지-

이 영화는 그런 척만 하느라 바쁜 어른들을 위로하는 영화다.
때로는 인생은 되는 일 하나 없이 영화처럼 꼬이기만 한다.
가족들은 천방지축 날 뛰고 속만 썩인다. 주장만 하고 듣질 않는다.
사람도 모자라 차도 고장난다. 떠난 사랑이 눈 앞에서 행복하다.
대회장으로 가는 길 마다 상처가 하나 씩 생긴다.
모든 것이 입만 망연하게 벌리고 지켜봐야 하는 것 처럼 멀다.

사실, 실패나 삶의 굴곡이 인생의 가장 큰 교훈이라고 말하는 것은
성공한 이들이나 할 수 있는 이야기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강하게 만든다'는 니체의 격언은
지나치게 과정을 무시한 결과론 적 발언이다.
거창하게 찾아 올 결과를 기다리라는 위로는 언제나 기약이 없다.

그래서 이 영화가, 우리에게 건네는 손길은 의미가 있다.
이 영화는 행복의 단면을 잘라보여주는 영화처럼 우리를 위로하지 않는다.
그냥 다정한 얼굴로 웃으며
'그래, 바뀌는 것 하나 없어도 눈물을 닦어내야지;' 라며 건네는 손수건 같다.

인생이 행복해질 수 있는 요소 중에 '성취'라는 단어가 차지하는 부분은 크다.
하지만 삶에서 얼마나 많은 성취를 만날 수 있을까.
우리가 함께 걷는 것은 무수한 과정이다.
그 과정에서 전복되고 다치는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가장 늦게 오는 결과가 아니라
'괜찮아' 라는 가벼운 다독임이다.
그리고 그것이 가장 가깝고 살갑게 느껴지는 위로임은 두 말 할 필요가 없다.

이 영화가 행복하지 않아도 행복하고 히스테릭한 가족이 사랑스러운 것은,
그런 '가벼운 햇살'의 소중함을 알기 때문이다.


잘알지도 못하면서


예전에도 언급했지만
우리나라에서 가장 제목을 잘 짓는 감독은 단연 홍상수다.

홍상수는 이름만 들어도 웃기다.
제목은 끝내준다.
포스터의 남과 여는 절대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그렇다.
로맨스는 그런것
간절함은 뒷통수에 맞아 아스러지고 
애절함은 귓볼을 스쳐 지나간다.

이것이
홍상수 식 멜로드라마.


허진호



때론, 마음도 약이 필요할 때가 있다.
그럴때마다 늘 같은 자리로 돌아온다.

당신의 영화.
그게 언제라도 예외없이 위로가 된다.
그래서 고맙다.

허진호 감독, 그리고 그의 영화들.



스탠드 바이 미 (stand by me)



스티븐 킹의 중편소설 <시체 The Body>가 원작이며
시체를 찾아 떠난 네 소년이 이틀 동안 겪는 우정과 모험,
그리고 공포의 진정한 의미를 그린 성장영화.

캐릭터를 바라보는 시선이 무척이나 따뜻한
감독 롭 라이너의 연출 속에는
소설의 첫 문장인
"The most important things are the hardest things to say"
"가장 말하기 힘든 것이 각자의 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다" 의
메세지가 잘 녹아있다.



금성무



크리스토퍼 도일의 꽃을 들고 달리는 것 같은 핸드헬드 화면.
이 영상속에 불쑥 등장하는 한 남자.
"내 이름은 하지무. 경찰이고 배지넘버는 2230이다"
라고 말하는 순간,
전 세계의 소녀들은 책상 위에 그의 사진을 꽂을 다급한 준비를 마쳤고,
멀리 이탈리아의 디자이너 프라다여사는 다음 시즌 광고모델을 결정했다.

금성무는 고작 두번째 영화 <중경삼림>으로
당대의 가장 아름다운 남자의 대열에 섰으며
하이패션의 선봉장, 프라다의 얼굴이 됐다.

삐삐의 메시지 암호를 '너를 영원히 사랑해'로 정한 것,
여자의 흙 묻은 구두를 메고 있던 타이자락으로 닦어주는 것,
생일 축하한단 메시지 하나에 가슴에 손을 대고 한참을 있는 것.
눈부시게 로맨틱했던, <중경삼림> 그때의 금성무가 그리워진다.



hommage



박찬욱은 귀엽고 봉준호는 사랑스러우며 김지운은 섹시하다.

시시덕거리고 싱거운 소리만 해대지만,
마음은 뾰쪽하고 베베 꼬이고 날카롭고
게으르기도 하지만 재빠르고,
자기를 지킬 줄도 알지만 잘 팔아치우기도 하는!

아이고, 멋있어라!
|  1  |  2  |